남이섬은 본래는 섬이 아니었으나 1944년 청평댐을 만들 때 북한강 강물이 차서 생긴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내륙의 섬으로, 1965년 수재 민병도 선생(1916~2006)이 토지를 매입, 모래뿐인 불모지에 다양한 수종의 육림을 시작하였다.
1966년 종합휴양지로 조성하던 중, 90년대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을 극복하고자 2000년 4월 주식회사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현재 남이섬 CEO로 있는 강우현 대표는 홍익대학교의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플래닝디렉터로 활동하면서 현재 남이섬을 디자인하는 중이다.
많은 영화 촬영지 및 강변가요제 개최지로 알려졌으며, 2001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대만,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권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문화관광지>로 탈바꿈하였고, 최근에는 북미, 유럽, 중동에서의 관광객뿐 아니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청정환경의 <국제적 관광휴양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연평균 입장객 150만명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남이섬홍보지인용>>
이곳을 남이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남이장군의 묘소가 있기 때문이다. 남이장군은 조선 세종조의 인물로서 왕족(외척)이다. 17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 13년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으며,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세조가 죽고 예종이 등극한후 그의 공적을 두려워한 유자광 등에게 역적으로 몰려 2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남이장군이 모함을 받게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어느날 궁궐에서 숙직을 서다가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무심결에 '옛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했는데, 평소에 남이를 시기하던 유자광이 이 말을 엿듣고는 남이가 역적 모의를 꾸민다고 모함하였다. 더구나 남이장군이 지은 시로 알려진 "南怡將軍 豪征詩" 의 한구절을 빌미로 삼아 대역 죄인으로 몰았다.
이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南怡將軍 豪征詩
유자광은 "男兒二十未平國"의 구절을 "男兒二十未得國"로 바꾸어 "나라를 얻지못하면"으로 해석하여 모함했다 한다.
그러나 가평의 남이섬에 있는 남이장군묘는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예전부터 남이장군 무덤이라는 불리는 묘가 한기 있었는데, 정확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고 다만 그가 이섬에 묻혔다는 전설이 담긴 돌무더기가 전하여왔고 그 돌을 함부로 가져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인근 주민들사이에는 입으로 전한다 고 한다. 그러나 남이장군의 무덤은 화성군 비봉면 남전2리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넷망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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