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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대안탑 북광장, 섬서박물관, 서안성벽 - (중국여행 네째날)

이 상용 2012. 11. 25. 20:33

중국 산시성의 성도 시안(서안,西安)

한때는 장안(長安)으로 불렸으며 현재 우리에게는 서안(西安)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도시다.
선사시대 섬서앙소문화(신석기)의 중심지로 시작된 이 도시는 한나라에서 당나라를 거치는 1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중국의 수도를 지낸 고도이다. 그래서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과 더불어 세계 4대 고도(古都)로 꼽힐 뿐만 아니라 과거 동서양 문화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기도 하다.


 전한(前漢)시대 최초로 개척된 실크로드의 발달은 시안을 중국이 아닌 세계 속의 도시로 부상하게 한다. 중국은 실크로드를

따라 비단을 수출했고,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세계의 모든 사상과 문화는 시안으로 모였고, 시안에서

갈라져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고려 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지금의

서안)에 신라의 왕자, 구법승려,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위키백과 발췌>

 

 

 

 

 

 

 

 

 

 

 

 

 

 

 

 

 

 

 

 

 

 

 

 

 

 

 

              ↑대안탑(大雁塔)은 서안시 남쪽 4㎞ 지점의 자은사(慈恩寺) 경내에 있으며 서유기로 잘 알려진 당나라의 소승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의 번역과 그것을 소장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하여 세운 탑으로 높이 64m,

              둘레 25m의 7층탑으로 건립된 지 1천년이 훌쩍 지났어도 여전히 서안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탑이다.

 

↑ 분수쇼로 유명한 서안 북광장은 분수대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대하고, 대안탑과 어우러진 분수쇼 규모가 한때는 아시 아에서 가장 넓은 분수였다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낮시간이기도 했지만 분수쇼가 열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명승지라서인지, 조형물들은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듯 해 보였고 또 아름다웠다. 우리의 고궁이나 광장에도 우리나라 특색 맞는 이런 섬세한 작업이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유(韓愈)의 동상 -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고문(古文)의 대가 여덟 명 중 수좌를 차지한 인물로 당나라사람~   

 

 

섬서성(陝西省) 최대의 박물관인 섬서역사박물관 서안시 섬서역사박물관은 국가급 역사박물관으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가장현대화된 역사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건물에는 원시시대부터 1840년 아편전쟁 중에 섬서성에서 출토된 각종 전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쪽 주제 전시관에는 주로 실크로드 등 섬서성의 역사, 문화 등에 관련된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품은 청동기, 도용, 금·은 장신구, 당나라의 무덤 벽화 등이다. 

  동쪽에 있는 역사문화 전시관에는 주로 중국과 외국의 문화교류를 주제로 한 전시품들이 있으며, 전국의 성과 시의 문화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서안시 관광국> 

 

 

 

 

말과 수레, 수발들던 사람까지도 동시에 묻는 순장.

 

 

↑ 말과 수레를 순장한 묘를 발굴하기전 모습이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의 지도 (장안성의 엄청난 규모가 놀랍다.)

 

 

삼채천왕상,  지금도 사찰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천왕상이다.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당대에 무덤의         

 수호신 성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북위의 석굴 불교문화

 

 

 ↑사자상 뒤에있는 병풍처럼 펼쳐진것은 황하강이 흐르는 모습을 표현한것이다. 앞에 이 사자상은 측천무후의 능(고종과 합장되어 있는 건릉)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라는데. 진품은 도둑맞고 가품이란다. 이큰 물건을 어떻게 훔쳐 갔을까..? 

 

 이 베틀로 짠 실크를 들고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과 교역했을 것이다.                                                            

 

 

중국은 기원전 2,200년 무렵부터 청동기시대로 들어서는데, 중국 청동기문화의 전형은 상나라와 주나라이다. 상나라와 주나라 때는 앞 시대의 문화적 특성에 추가하여 왕의 정치 권력행사와 관련된 궁궐, 중국시 예제와 관련된 종묘, 청동예기, 청동악기, 정보전달과 관련된 문자, 거주 형태와 관련된 도시가 새로 발생했다.

 

 ↑ 금잔과 금전

 

 

 

 

 

원대, 송대의 자기들

 

 

↑ 채색인물상

 

 

         ↑진시황제- 작고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머리가 뛰어나고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였다고 한다.                                       

 

 

병마용(兵馬俑)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제작되었다. 병마용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되었으며, 700여 개의 실물크기의 도용(陶俑)과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 필의 말, 10만여개의 병기가 발굴되었다. 병기들 대부분이 실제 무기이며 현재는 창고에 보관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용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스타일을 하고있어서 그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병용을 제작할때 그 직책에 맞도록 인물의 상을 각각 표현했는데, 이분은 책사란다...                                        

 

 

 

 

 

병용(兵俑)의 다양한 얼굴 표정들

 

 

당삼채(唐三彩)는 당나라때 도자기의 하나이다. 잿물이 백, 황, 녹 등  세가지 빛갈로된 도자기로 무덤에 넣는 그릇으로 많이 쓰였다.

 

 

 

 

 

서안성벽(西安城墻)

서안은 당나라 때 장안성으로 불렸고, 원나라 때 봉원성으로 불렸으며, 현재의 장안성벽은 당나라 장안성의 기초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성벽의 바깥쪽은 성을 보호하는 하천이고, 4개의 성문이 있다(동쪽의 장각문, 서쪽의 안정문, 남쪽의 영정문, 북쪽의 안원문).월성과 큰 성문 위에는 각각 높은 헐산식 성루를 만들고 두 건물을 마주보게 하여 성루 위의 모든 동태를 엄밀히 살필 수 있었다.
서안 성벽은 이미 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규모가 크고 보존이 비교적 완전하여 둘러볼 가치가 있다.  <서안관광국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