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몬드리안
피트 몬드리안은 1872년 3월 7일, 네덜란드의 아메르푸르트(Amersfoort)에서 태어나 1944년 2월 1일에 생을 마감한 네덜란드의 근대 미술 화가이다.
아버지는 기독교 학교에서 일하던 교육자로 매우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이었으며 금욕과 절제를 생활화했던 인물이라 몬드리안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쳐다. 몬드리안의 아버지는 그가 화가가 되는 데에 반대하면서 목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892년, 암스테르담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한창 이맘때, 네덜란드에서는 헤이그파의 자연적 사실주의가 대세였고, 헤이그파는 바르비종파(Barbizon Scholl)에서부터 파생된 화파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몬드리안 역시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교회가 있는 마을>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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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이 <교회가 있는 마을>이라는 1898년 몬드리안의 작품이다. 이때의 작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화풍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그림은 몬드리안이 '신지학'에 기대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기 이전, 사실주의적 양식을 수용하여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후 뭉크, 반 고프, 아르 누보 등의 화풍을 수용하고 발전하면서 몬드리안은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
<저녁 : 붉은 나무> 1908년 작
이 그림은 1909년 1월에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열었던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입니다. 출품 당시 굉장한 호평을 받았는데 이를 계기로 사실주의와 몬드리안은 영영 이별하게 되었죠. 잘 보면 뻗어나가는 가지에 몬드리안이 상당히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나뭇가지의 얽힘은 훗날 그의 <격자 구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회색 나무> 1911년 작
앞서 보았던 <저녁 : 붉은 나무>를 좀 더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나뭇가지들의 얽힘에 집중하면서도 그 모양을 조금 더 기하학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시기에 몬드리안은 하나의 사물을 선택해 수평 및 수직 구조를 탐색하였는데, 1911년은 몬드리안의 그림 인생에 상당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때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해 10월, <세잔 기념전>을 통해 그가 큐비즘 작품들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회화란, 사실주의가 아니라 순수 조형성의 법칙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순수 조형성이란 자연과 전혀 상관없이 그림만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려는 성질을 말한다. 몬드리안은 큐비즘을 통해 회화가 몇 개의 기호로 단순화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위의 그림은 1912년 작품으로 <나무>입니다. 세잔과 브라그를 합친 듯한 화풍이다. 위에 말한 '몇 개의 기호'로 표현한 나무다. 즉, 곡선과 직선이라는 단순 기호로 그려낸 작품이다. 몬드리안은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평면 위에 표현되는 예술이므로 그림 속에 부피감을 집어 넣어 표현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아주 평면적인 그림이다. |
이제 격자무늬에 대한 몬드리안의 조회가 시작되는 듯한 그림 한 점을 본다. 이 작품은 <검정과 흰색의 구성 No.10 : 부두와 해양>이라는 작품으로 1915년에 발표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림은 부두와 해양을 단순화한 '기호'로 표현한 작품이다.
파도가 변덕스럽게 구는 그 리듬감을, 그 근원적 형태인 +와 -라는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몬드리안은 양과 음, 형태와 공간, 수직과 수평으로 대변되는 이원론적 원리에 근거한 기호들이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성을 충분히 규명할 수 있다고 믿었단다. |
시간이 흐를수록 몬드리안의 조형성에 관한 이론도 슬슬 틀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이 그림은 <격자 구성 No.9 : 밝은 색채의 바둑판 무늬>로 1919년 작품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격자 구성에 비하면 아직은 리듬감이 많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몬드리안은 직각이라는 표현의 속성이 '역성질이 만나 완벽을 이루는 구조'라고 생각했다.
또한 노랑은 빛의 운동, 파랑은 노랑의 대립, 빨강은 노랑과 파랑을 이어주는 매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색상과 직각을 구성하여 위와 같은 그림을 완성시킨 것이다. 초기 격자 구성인 이 그림에는 자연만큼이나 불규칙성이 드러난다. 색채의 특성에 의해 들쑥날쑥한 느낌이들어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그림이라고 평가를 내려도 과언은 아니겠다. |
드디어 우리가 쉽게 보아왔던 몬드리안 스타일의 격자 구성이 등장했다. 이 그림은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으로 1920년 작품이다. 드디어 신조형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몬드리안다운 작품이다. 배경과 형태는 분리되지 않으며 (이는 흰색을 사용해 배경과 형태를 모호하게 표현했기 때문) 완전 평면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한한 리듬감이 느껴지기도 하며 신조형주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한 것은자연의 불규칙성을 완전히 탈피했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은 자연이 너무나 변덕스럽고 무질서하다고 하여 싫어했다. 특히 녹색은 자연을 환기시키는 색채라 하여 무척이나 혐오했다고 한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선물밭은 꽃의 이파리를 흰색으로 칠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
몬드리안은 이런 식으로 마름모꼴의 구성도 시도했다. <빨강, 회색, 파랑, 노랑, 검정의 구성>이라 이름붙였으며 1924년부터 25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이다.
기존의 직사각형 구성이 상당히 엄격하고 제한적인 느낌이었다면, 마름모꼴의 구성은 조금 더 엄격함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캔버스 안은 비록 직각(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마름모 꼴의 캔버스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는 곧 다이나믹한 리듬감으로 연결되며, 좀 더 역동적인 느낌이 든다. |
이 길쭉한 그림은 <흰색과 노랑의 구성 N0.3 :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이다. 1935년에서 42년 사이에 그려 졌다. 기존의 작품들이 수직과 수평의 공존 관계였다면, 이 그림은 수직선이 월등히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신조형주의의 이론과 어긋나는 작품이랄 수 있다.
몬드리안이 주창했던 신조형주의에 의하면 보편성과 평등은 항상 지향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수직선의 압도적 배치에 의해 수평선과의 평등 관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비극'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본래 몬드리안은 이론가라서 자신의 이론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그림을 맞추려 노력한 인물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론에서 어긋나는 작품을 때로는 이렇게 그려내기도 했다. |
1938년에서 43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콩코드 광장>이란 그림이다. 색채가 사각형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에는 몬드리안이 한창 전쟁을 피해 망명하여 뉴욕에 머무를 때 이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가 한창 자유를 느낄 때였는데 그림 또한 자유로워지는 게 이상할 리 없다. 심지어 뉴욕의 쭉쭉 뻗어있는 기하학적 빌딩숲에 찬탄하고 안정감까지 느꼈다는 몬드리안이니 말이다. |
이 작품은 1942년에서 44년 사이에 그렸다고 하는<빅토리 부기우기>라는 작품이다. '부기우기'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적 요소가 도입되었다. 그가 과거에 사용하던 제한적 검은 띠는 모조리 지워버렸으며 색색의 작은 정사각형이 연결되어 그 띠 역할을 대신하게끔 작품을 완성했다.
전반적으로 밝고 화사하여 신조형주의 이론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되었다. 즉, 그가 전생애에 걸쳐 탐구해왔던 절대적 평면에 대한 신념이 흔들렸다고 할 수 있겠다. |
몬드리안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신지학과 신조형주의이다. (신지학(Theosophy)이란 종교와 철학을 융합시킨 세계관) 물질을 정신의 최대 적으로 간주하는 세계관인 동시에 물질적인 외형은 곧 파멸되고 새로운 정신의 시대,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 또한 지녔다. 몬드리안은 이 신지학을 거의 신봉하다시피 하여 항상 관련 책을 곁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라는 용어를 차용하게 된다. 본래 이 말은 쉔마커스의 <세계의 새로운 이미지>라는 저술서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쉔마커스에 의하면, 예술가란 생동하는 현실을 관찰하는 이이므로 신비주의자라고 했다. 또한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양식을 추구해야 하며 세계는 '정확한' 아름다움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이러한 쉔마커스의 관념이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 위의 모든 그림은 넷망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 넣었고, 몬드리안에 대한 설명은 <20세기 미술사> (김현화 저, 한길아트) 를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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