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계의 황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마일스 데이비스< 1편 >
재즈계의 황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계의 황제’라는 별칭과 함께, 어떤 평자는 ‘재즈계의 피카소’라고까지 예찬하고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는 별명에 걸맞게 재즈계에 미친 영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제한된 지면이라 간략하게 소개하지만, 언젠가는 독자들을 위해 마일스 데이비스의 일대기를 시리즈로 연재할 마음을 갖고 있다.
| |
![]() |
마일스는 모던 재즈의 패러다임을 강력하게 제시한 아티스트로, 재즈 역사를 통해서 보면 마일스만큼 실험적이며 개혁적인 뮤지션은 드물다. 퓨전 재즈의 전형을 제시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족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이채롭다. 게다가 마일스만큼 멋을 아는 뮤지션이 드문 바, 그는 장르의 구별 없이 전음악을 통하여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였다,그러나 마일스가 있기까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비밥 재즈의 비조,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간과할 수 없다. 또 명편곡자 길 에번스의 끊임없는 조력도 힘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
일대 전환점된 두 만남,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듀이 데이비스 3세는 1926년 5월 26일, 일리노이주 앨턴에서 태어났다. 속설에는 25일생이라는 착오도 가끔 보인다. 이 점은 차치해 두고, 27년에 가족이 앨턴에서 아주 가까운 미주리주 이스트 센트 루이스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자라게 된다. 아버지는 치과 의사로, 흑인으로서는 중류 이상의 가정이었으므로 유복하게 자랐다. 이런 환경에서 마일스는 음악에 관한 흥미와 깊은 이해를 갖게 된다.
13세가 되던 해 생일에 아버지로부터 트럼펫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 짓게 된 중요한 계기다.
찰리 파커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음악과 인생을 배워
한때는 마약 중독으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 |
이런 마일스의 9중주단(Nonet)의 연주는 사운드상으로는 쿨 재즈로, 음색이나 편곡의 중요도라는 면에서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탄생에 크게 시사한 바 있다.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마일스는 이 시기부터 80년대까지 일관해서 재즈계를 리드하는 존재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다. 그러나 50년대 초는 매카시 선풍 등으로 뉴욕의 예술계는 불황에 휩싸이고 흑인 재즈도 활기를 잃게 된다. 마일스도 52년 무렵 마약 중독으로 슬럼프에 빠졌으며, 52년에는 다만 블루 노트 레코드사에 원 세션 정도 밖에 남기지 못했다. 이때가 마일스로서는 최악의 시기라고 그는 술회한 적이 있다 | ![]() |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들 Miles Davis Working |